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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살인으로 이어진 망상장애
 
[고교시절 짝사랑하던 女교사 살해한 제자, 왜]
타인과의 사이 가깝다고 착각, 결혼소식에 "버림받아" 배신감
피해의식이 극단적 행동 불러

 
2014.1.16. 조선일보
나해란 의학전문기자


 
서울중앙지검은 짝사랑하던 여교사 조모씨를 살해한 혐의로 유모(22)씨를 구속 기소했다고 14일 밝혔다. 유씨는 2009년 당시 고교 2학년 때부터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준 여교사 조씨(당시 30세)에게 호감을 느꼈다. 그러나 조씨는 어디까지나 스승과 제자의 관계로 유씨를 대했다. 유씨는 이 문제로 3개월간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지만, 이상(異常)행동을 반복하다 끝내 잔혹한 살인까지 저질렀다.

유씨는 '망상(妄想)장애 의증(疑症)' 진단을 받았었다. '망상장애'란, 명백히 이상한 행동을 보이지는 않지만, 특정한 주제에 대해서는 고도로 체계적인 허구 속에 사는 병이다. 예컨대 '누군가 자기를 사랑한다'고 느끼는 색정(色情)망상이나 '누가 악의적으로 나를 해코지한다'는 피해망상 등이 여기에 속한다.

정신분석적 관점으로 본다면, 망상장애 환자들이 허구의 세상을 꾸며내는 것은 현실의 도피처를 만드는 것이다. 허구가 깨지면 자신의 가치나 삶의 이유 등 모든 것이 없어지므로, 무의식적으로 꾸며낸 사실을 진짜라고 믿는다.

그런데 유씨는 망상장애 이외에도 인격장애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유씨가 여교사에게 비정상적인 애착을 보인 점, 거절당하자 극단적인 분노를 느껴 범죄를 저지른 점 등에서 알 수 있다. 이런 경계(境界)선 인격장애 환자들은 타인과의 심리적 거리를 잘 구분하지 못해 실제 관계보다 더 친하다고 여긴다. 또 이들은 버림받지 않기 위해 끝없이 집착하고 매달리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이 스토킹이다. 특히 강압적으로 상대방 삶을 침범하고 통제하는 잘못된 방법으로 친해지려 하는데, 본인은 이것을 피해자의 마음에 상관없이 '사랑'이라 여기는 경향이 있다.

경계선 인격장애 환자들은 자존감이 대단히 불안정해 열등감에 시달린다. 그리고 충동을 조절하지 못해 때로 아주 파괴적인 행동을 보일 수 있다. 유씨도 이전부터 열등감에 시달려왔을 가능성이 크다. 2010년 당시 여교사가 유씨 부모를 불러 유씨의 이상행동을 알려주자, 부모는 "한심하다"고 유씨를 꾸짖었다. 가뜩이나 자존감이 낮은 유씨는 부모의 꾸중에 큰 분노를 느꼈을 가능성이 높다.

3개월간 정신과 입원 치료를 받은 유씨는 이듬해 미국에 있는 대학 간호학과에 진학했다. 미국에서도 유씨는 항상 '나는 잘 못 지내는데 너(조씨)만 잘 지낸다'는 생각에 분노를 느꼈다. 그러다 작년 7월 조씨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은 후 400여회에 걸쳐 협박 이메일을 보냈다. "넌 내 여자야"라는 제목에서 볼 수 있듯, 유씨의 머릿속에서 유일한 애착 대상이었던 조씨의 결혼에 큰 배신감을 느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그는 끊임없이 "네가 너무 미워서 죽이고 싶어"라고 이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그런데도 조씨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유씨는 인터넷 검색 등을 통해 알아낸 조씨의 직장으로 찾아갔다. "사귀자"고 했지만 조씨는 "앞으로 연락하지 마라"고 거절했다. 유씨는 재차 찾아갔지만 "스토커로 고소하겠다"는 얘기에 결국 조씨를 살해하기에 이른다. 유씨의 마지막 말은 "네가 날 만만하게 봐서 이렇게 된 거다"였다. 잘못된 애착 관계가 자신이 버림받았다는 피해의식으로 변해 분노를 만들고 살인에까지 이른 것이다.

망상장애는 치료가 잘 되지 않아 장기간에 걸쳐 적절한 약물·행동치료를 병행해야 한다. 인격장애도 고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이들은 병원을 잘 찾지 않는 경향이 있다.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윤대현 교수는 "인격장애나 망상장애로 치료를 받는 경우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며 "유씨가 꾸준히 치료만 받았더라도 이런 참사는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