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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심리적 부검' 부산 첫 도입
 
 
조성민씨의 자살로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의 자살률 문제가 다시 불거진 가운데 부산시가 전국 처음으로 자살 예방을 위한 '심리적 부검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이 제도는 1980년대 세계 1~2위의 자살률로 골머리를 앓던 핀란드가 실시했던 국가 차원의 자살 방지 프로젝트의 핵심이다. 당시 핀란드의 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30.3명이었는데 '심리적 부검'을 핵심으로 한 프로그램을 펼쳐 20여년 만에 자살률을 절반 수준으로 낮췄다.

2011년 기준 한국의 자살률은 31.7명으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1위다.

부산시 김종윤 건강증진과장은 "부산의 자살자 수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고 7대 광역시·도 중 순위도 3위"라며 "시 차원의 자살 예방 시행 계획을 수립하면서 국내 최초로 '심리적 부검'을 도입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심리적 부검을 위해서는 자살자 주변에 대한 폭넓은 조사가 필요하다. 부산시의 계획에 따르면 자살한 사람이 발생하면 초기 경찰 조사 단계에서부터 심리적 부검을 시행하게 된다. 정신과 전문가들이 자살자의 심리적 부검을 위한 조사 항목 리스트를 만들면 이것으로 경찰이 조사한다. 조사에는 우울증과 약물 복용 여부 등 병력, 거주 형태, 소득, 나이, 직업, 가족·친구 관계, 대외활동 정도 등 20여개쯤의 항목이 포함된다.

시내 15개 경찰서에서 자살 사건 담당 경찰관들이 조사한 보고서는 분기별로 모아 자살예방센터로 보낸다. 정신과 전문가들이 경찰이 보낸 조사 결과를 토대로 좀 더 심층적인 '심리적 부검'을 실시하게 된다. 이렇게 모은 조사 자료를 토대로 어떤 계층이나 심리적 환경에 처한 사람이 자살 고위험군에 포함되고 어느 시기에 자살을 많이 하는지 등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다. 시는 이를 토대로 자살 예방대책 수립을 하게 된다.
핀란드는 1980년대 이와 비슷한 방식의 심리적 부검을 대대적으로 실시했다. 1986년부터 5년간 전문가 6만명이 동원됐다. 자살자 1337명의 유족과 주변에 대한 심층 조사가 진행됐다. 이 조사에 따라 자살한 사람의 3분의 2가 우울증을 앓고 있고 이 중 15%만이 우울증 치료를 받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또 실직자나 가정 불화 등 자살과 직접적 상관관계가 높은 요인을 뽑아 자살 위험군으로 분류해 관리 대책을 세웠다. 핀란드 정부는 일반 환자도 병원에 가면 우울증이나 자살 충동 여부를 주기적으로 쉽게 체크하도록 했다. 잠재적 우울증 환자를 적극적으로 발견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처럼 자살 위험군의 사람들을 파악한 뒤 이들에게 상담치료와 약물치료를 병행했다. 이 덕분에 자살률이 23년 만에 절반 수준이 된 것이다.

반면 한국은 2004년 자살예방대책 5개년 계획을 세웠으나 실패로 끝났다. 당초 목표는 5년간 자살률을 20% 줄인다는 것이었지만, 2004년 23.7명이던 자살률은 2009년 31명으로 오히려 28% 올라갔다. 당시 계획은 우울증 치료나 지역 정신보건센터 설립 등 자살을 개인의 정신적 문제로 보고 접근하는 것이 주를 이뤘다. 전문가들은 바로 이런 1차원적 접근이 계획의 실패 원인이라고 평가한다. 2011년 국회입법조사처는 이 계획의 실패 원인에 대해 "자살 고위험군의 정신질환 관리에만 중점을 두고 업무를 추진한 데다가 사회·경제적 환경에 대한 접근을 포함하지 않았기 때문에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1차 계획의 실패가 확실해지면서 심리적 부검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하지만 한국자살예방협회가 보건복지가족부의 지원을 받아 2009년 인천과 경기도 수원, 강원도 원주시에서 심리적 부검 시범사업을 한 것이 전부다. 심리적 부검 건수도 7건에 그쳤다.

한국자살예방협회 홍강의 이사장은 "심리적 부검을 해보면 자살한 사람의 부모나 주위 사람들이 '그러지 않아도 마음이 아픈데 그걸 다 캐내느냐'는 식으로 나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자살자 유족들의 적극적인 협조와 사회적인 합의, 관련 기관들의 의지 등이 아주 중요하다"고 말했다.

☞심리적 부검

전문 검사관이 자살자의 가족·친구들을 만나 심층면접을 하고, 고인의 일기 등 개인적 기록과 병원의 의무 기록, 검시관의 진술 등을 수집해 자살 원인을 규명하는 것이다.